<디스는 정말 힙합 문화일까?>

 

설명꾼_이석현(4년째 랩을 하는 래퍼 지망생)

 

 

 4년 간 랩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그룹에 어떤 글을 올리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가져와 본다. 원래 블로그에 올릴 때 제목을 <내가 쇼미더머니에 안 나가는 이유 - 래퍼는 복싱 선수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설명을 적는 그룹인 만큼 제목을 위와 같이 바꾸었다. 물론, 아래에 적힌 글도 조금씩 바꾸었고,

 

 상대에게 악감정 없는 상황에 싸우는 사람이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없다. 악감정이 없는데 싸울 일이 없지 않는가. '나는 쟤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움을 기피하고, 싸워서 이길 확신이 들고 싸움이 일어날 법한 상황에도 싸움을 피하려고 한다. 법의 지배하에 있는 우리들은 싸우면 서로 손해인 걸 알기에.

 

 그런데 상대에게 악감정 없는 상태에서도 싸우는 경우가 있긴 하다. 물론 정해진 룰 안에서 서로의 안전을 생각하며 링에서만 하는 스파링이 싸움과 다른 거긴 하지만, 크게 놓고 보면 격투기 선수들의 대결이 상대에게 악감정 없이 싸우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격투가들에게 왜 싸우냐고 묻는다면, 격투가들에 따라 다르게 얘기하긴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링 위에서 그렇게 싸우는 게 그들만의 문화인 거라고 얘기를 할 것이다. 그러면, 이걸 요즘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에 주구장창 나오는 디스 배틀로도 연결을 시켜보자. 저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말한다. "디스는 힙합 문화예요" 이 말이 과연 사실일까?

 


 힙합 역사에서 유명한 디스전을 꼽자면, 미국에서는 동부 힙합과 서부 힙합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졌던 2pac(투팍)Notorious B.I.G.(비기)의 디스전이 있을 것이고, 한국에서는 스윙스를 필두로 한 컨트롤 대란이 있을 것이다. 우선 투팍과 비기의 디스전을 살펴보자. 투팍과 비기는 원래 친구였지만, 투팍이 총격에 휘말리게 되며 둘의 사이는 멀어졌다.

 


 원래 성폭행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던 중이었던 투팍은 선거공판 전이라 사회에 있었고, 곡을 만들기 위해 녹음 스튜디오가 있던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도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총을 맞았다. 다행히 수술을 통해 투팍은 살아남았지만, 이후 성폭행 혐의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투팍은 이 때 감옥에서 비기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이를 사실로 믿어 감옥에서 나온 뒤 Hit 'em up이란 곡을 내면서 투팍과 비기의 디스전 서막을 알리게 된다. , 이 디스전은 서로간의 불화로 인해 생긴 디스전이라는 것이다. 투팍과 비기가 싸우기 좋아해서 악감정 없이 서로를 디스한 게 아니라.

 

 그러면 이번엔 한국 힙합판에서 스윙스가 일으킨 컨트롤 대란을 살펴보자. 이 대란은 정말 복잡하게 얽혀있다. 개코와 이센스 등의 아메바컬쳐 쪽 사람들과 아웃사이더나 지백 등의 스나이퍼 사운드 쪽 사람들, 테이크 원이나 어글리 덕 등의 두메인, 벅와일즈 쪽 사람들그리고 이 어디에도 속하진 않지만 곡을 낸 딥플로우나 팻두, 타이미, 타래데드피 등등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긴 한데, 사실 이 컨트롤 대란의 시작을 디스라고 보기엔 애매한 감이 있다



 이 대란이 컨트롤 대란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 , 이 대란에 주로 사용된 반주인 컨트롤 비트는 빅 션이라는 미국 래퍼의 곡 control에 사용된 비트를 말하는 것이다. 왜 이 비트가 사용 됐냐 하면, 빅 션은 control 곡에 켄드릭 라마와 제이 일렉트로니카를 피쳐링으로 참여시켰는데, 여기서 켄드릭 라마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래퍼들을 언급하며 "내가 너희보다 랩 더 잘 해"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켄드릭 라마가 언급한 래퍼는 정말 많은데, control 곡에 같이 참여한 빅 션과 제이 일렉트로니카는 물론, 에이셉 락키나 타일러 등의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다. 웃긴 건, 보통의 디스전이라면 언급된 사람들이 시비를 걸린 거니까 기분을 나빠하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이때는 언급 안 된 래퍼들이 기분을 나빠했다는 것이다


 "왜 나는 안 껴줘?"라는 식으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블랙넛이 100이란 곡을 통해 수많은 래퍼들을 언급한 다음 마지막에 "내가 다 이기죠!"라고 한 것과 비슷하게, 언급 안 된 래퍼들을 중요한 래퍼로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본 거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본인이 잘났다는 걸 말하기 위해 래퍼들을 언급한 블랙넛과 달리켄드릭 라마는 '너희 다 잘 하지만 내가 더 짱이다,인정 못 한다면 우리 한 번 랩으로 경쟁을 해보자'라는 내용을 담은 거였기에, control 곡에 언급된 사람들은 물론, 언급 안 된 사람들까지 켄드릭 라마에게 경쟁하자고 곡을 만들었다.

 

 스윙스도 처음에는 켄드릭 라마와 비슷한 의도를 갖고 king swings라는 곡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는 진짜 악감정을 담은 디스로 변했고, 스윙스까지 그 디스에 언급되면서, 스윙스 자신도 디스로 방향을 바꾼 게 아닐까 생각된다



 즉, 스윙스가 King swings라는 곡을 만들었을 때에는 디스의 의도가 없었을지 몰라도, 변질된 이후 컨트롤 대란에 뛰어든 래퍼들은 본인이 곡에서 언급한 래퍼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를 디스한 지백이나 데피닛, 개코를 디스한 이센스, 스윙스를 디스한 사이먼 도미닉 등,이 사람들이 정말 악감정 없이 선의의 경쟁을 위해 곡을 만들었다고 보이진 않지 않는가.

 

 여기까지 보면, '디스는 힙합 문화 중 일부이다'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마 '힙합 문화 중에는 싫어하는 상대와 직접적으로 싸우는 대신 그 상대를 욕하는 곡을 만들어 싸우는 문화가 있다'라고 얘기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위에 언급했듯 힙합 문화에는 이러한 게 있긴 하니까. 발라드 가수들간에 악감정이 있을 때 발라드 가수가 상대를 욕하는 곡을 만들지는 않지만, 래퍼들은 그러한 경우가 있긴 하니까, 어떻게 보면 문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쇼미더머니(이하 쇼미)나 언프리티 랩스타(이하 언프) 제작진은 이를 오해하고 있다. 아니, 아마 정확히 말을 하자면, 쇼미 제작진은 오해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쇼미 3까지만 해도, 디스는 그닥 나오지 않았다. 올티의 바비 디스가 있긴 했지만, 그건 올티가 개인적으로 행한 행동일 뿐이었다


(Mnet '쇼미더머니4')


 디스가 제작진에 의해 공식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쇼미 4에서부터였다. 쇼미 4에는 팀 디스 배틀이 있었는데, 이는 그냥 무작정 상대 팀을 까는 게 룰이었다. 솔직히 말을 해보자, 제작진은 이게 진짜 힙합 문화라고 생각한 걸까? 머리가 있는 한, 악감정 없는 서로가 싸우는 게 어떠한 곳의 문화일 거라고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힙합을 격투기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물론 배틀 랩이라는 게 존재하긴 한다. 그들은 정말 말 그대로 복싱 선수처럼 배틀, 싸움을 위한 랩을 한다. 이건 힙합 문화이기도 하다. 근데, 이러한 배틀 랩은 프리스타일로 보통 이뤄진다. 밀러나 박서 등의 프리스타일 대회에서 주로 우열을 가리기 위해 참가자들이 배틀 랩을 뱉는다. (게다가, 박서에서는 경기 후반에 칭찬 배틀도 한다. 이는 서로를 칭찬하는 랩으로 랩 스킬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아마 서로에게 악감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 쇼미, 언프의 디스 배틀의 차이점이라면, 프리스타일 랩 배틀 대회의 배틀 랩은 프리스타일 특유의 순간적 재치를 포착하기 위해 디스까지 하는 건데, 쇼미나 언프의 디스 배틀은 그냥 써온 가사로 배틀을 한다는 것이다. 랩 배틀의 기원이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의 capping만 봐도,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풀어놨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걸 알 수 있다.

 

 상식적으로, 즉흥적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것에서 재치를 찾는 게 아니라 그냥 미리 써온 남 험담하는 가사를 악감정 없는 사람끼리 뱉는 걸 갖고 문화라고 보긴 힘들지 않을까? 조금 다르긴 한데, '갱스타즈'라는 힙합을 주제로 한 네이버 웹툰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갱스타즈)


 9화를 보면, 마익훈이라는 혼혈인과 이글이라는 아이돌 래퍼가 랩 배틀로 붙는데, 마익훈은 써온 가사로 랩을 하고 이글은 그걸 비판한다. 애초에 랩배틀이 무엇을 위한 건지 생각을 해보면 프리스타일도 아니면서 아무 감정 없는 서로가 진심으로 디스하는 게 정말 웃긴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웹툰에서조차 마익훈과 이글은 그냥 랩 배틀을 한 게 아니라 악감정이 생겨 랩 배틀로 싸움을 대신한 것이다.

 

 쇼미에서 디스를 밀기 시작한 건 왜일까? 2014년 쇼미 3가 끝난 뒤, 언프 1이 방송됐다. 이 때 언프는 제시의 도발로 인해 한참 시끄러웠다. 게다가 4회에는 아예 디스 배틀이 나왔다. 언프는 이걸로 괜찮은 시청률과 인기를 챙겼고. 아마 이걸 눈여겨 본 엠넷에서 쇼미에다가 이 제도를 투입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쇼미에 나가는 래퍼가 많긴 하지만, 쇼미 안 나가는 래퍼도 있다. 솔직히 내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쇼미에 나가긴 한다. TV에 잠깐만 나와도 인기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처럼 힙합 문화를 오해하는 제작진들 때문에 쇼미에 나가기를 꺼리는 래퍼도 많다. 디스만이 아니라, 온갖 자극적인 장면을 힙합이라고 포장하는 것, 이거 문제 아닌가. 예선 지원자한테 밥 한 끼 물 한 병 안 주고 몇 시간 기다리게 하는 제작진의 엿같은 매너는 둘째 치더라도, 힙합을 오해하는 제작진의 태도는 래퍼들의 분노를 사기 충분하다.

 

 쇼미 측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서인지, 제작진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인지도 있는 래퍼에게는 어떻게든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화하긴 한다. 나조차도 전에 두 번이나 쇼미 나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쇼미는 어떻게 보면 인지도를 확실히 올려서 음악으로 돈 벌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기에, 많은 래퍼들이 쇼미에 나가기도 한다


 비유를 하자면, 수능 시스템에 문제 많은 걸 알면서도 수능 공부를 하는 수험생이나 쇼미에 문제 많은 걸 알면서도 쇼미를 나가는 래퍼들이나, 다 똑같은 시스템의 피해자 아닐까 생각한다.

 

 쇼미는 한국 힙합 고시이다. 합격되기만 하면 엄청난 인지도와 부를 쌓을 기회를 주는 힙합 고시. 킬라그램 같은, 이쪽 사람 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알던 래퍼가 엄청난 인지도를 얻게 되는 걸 보고, 수많은 래퍼들은 꿈을 꾼다. 나도 쇼미에 나가 잘만 하면 대박이잖아! 하고. 그런데 그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둘째 치고, 쇼미 자체가 불공정한 것도 있다


 모 래퍼는 이틀로 나뉘어 예선 심사를 봤던 쇼미 시즌에, 첫날 탈락했다가 둘째 날 제작진의 전화를 받고 다시 참여한 뒤 합격했다. 합격될 내정자가 있다는 건 알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나와 같은 래퍼 지망생이 있다면, 나는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아마 당신은 내정자이거나 이미 인지도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랩을 아무리 잘 해도 예선을 통과하기조차 굉장히 힘들 것이다." 쇼미 제작진은 랩 잘 하는 사람보다는 상품으로 만들어 팔 수 있는, 자극적인 인물을 원한다


 인지도가 없는 래퍼라면 랩을 일정 수준 이상 한다는 전재 하에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될 것이고 남자는 자극적인 면모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실력 어느 정도 되는 잘생긴 남자 래퍼는 솔직히 많기 때문에 잘생긴 건 큰 매리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러한 점을 많은 사람들이 알기에 가짜 스님 래퍼 같은 사람까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Mnet '언프리티랩스타')


 쇼미와 언프는 힙합 문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힙합을 팔아먹을 뿐이다. 오디션의 기본 목적인 신인 발굴도 이미 물 건너갔다. 10년 넘게 랩을 한 바스코가 참가자로 나오는데, 전설적인 한국 힙합 레이블(기획사) 소울컴퍼니에 소속돼 있던 매드 클라운이 나오는데, 언제나 언더에서 뜨거웠던 스윙스가 나오는데, 신인 발굴은 개뿔. K팝 스타에 더원 급 인물이 나와도 신인 발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스코나 매드 클라운, 스윙스 등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 힙합 판 자체가, 쇼미 안 나오면 아무리 이룬 게 많다 해도 정말 힘들게 먹고 살아야 하긴 한다. 전설적인 인물인 mc메타조차 병원 주차장 관리직 일을 했다는 건 힙합 팬들이면 대부분 알 것이다.


 그들에게 쇼미같은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욕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쇼미 안 나가는 허클베리 피 같은 인물에게 충고랍시고 '쇼미 나가세요' 하는 것도 정말 하면 안 될 짓이다. 정말 힙합이란 장르를 아끼는 팬이라면, 쇼미를 즐기더라도 쇼미가 획일화시키는 자극적인 힙합의 틀을 깨도록 쇼미에 안 나오는 래퍼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쇼미에 안 나오는 래퍼들 정말 많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도 쇼미에 안 나가는 래퍼이다.

 

래퍼는 복싱 선수가 아니다. 래퍼에게 싸움을 강요하지 마라.

 

ps https://soundcloud.com/user-487447262/1clnnr6agqkl

 

 이건 그냥, 쇼미에 안 나오는 래퍼는 어떤 음악을 하나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내 음악을 첨부한다. 나는 이런 음악을 주로 하고, 그러기에 쇼미에 나가도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에(이 노래를 부른다 해도 방송 탈 가능성은 없기에) 안 나가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데, 주위 사람들은 언제 쇼미 나가냐고 하도 물어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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