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개혁위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비상상고 신청 권고를 했습니다. 검찰총장은 검토 후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청구할 방침이고, 이에 따라 30년 만에 대법원에서 재심리가 열릴 예정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뭐길래 이러는 걸까요?
(비상상고 : 
확정판결에 법령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비상절차)



 이 사건의 배경은 대한민국 정부가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강제 체포가능)1986년 아시안게임·1988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앞서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서면서 시작합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당시 국내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로 역이나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부랑인을 선도해주기 위한 목적을 지닌 시설입니다.


(부산 형제복지원)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랑인들에 대해 영장 없는 체포가 가능했는데, 부랑인의 기준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아서 부랑인이 아닌 사람도 합법적으로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이러한 법의 허점을 노려 부랑인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까지 강제로 잡아다가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이들이 무고한 사람들까지 잡아들인 이유는 부랑인을 많이 수용하면 할수록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금이 많았기 때문인데, 형제복지원은 해마다 국가로부터 약 20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았습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 때는 12년 후인 1987년으로 수용자 35명이 탈출하면서입니다.


(위 사진은 글의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이렇게 실체를 드러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아주 참극이었습니다.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설 안에서 구타·감금·성폭행·암매장 등이 무분별하게 일어났고, 1975년부터 1986년까지 공식적으로 55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 비공식적으로는 더 많은 사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이 안에서의 극악무도한 인권유린에 의해 사망한 551명 중의 일부는 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피해자 한종선 씨가 그린 그림)


 죽어서까지 돈벌이로 이용할 정도로 극악무도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은 어떠한 대우를 받았을까요? 형제복지원 안에는 약 3천여 명의 수용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식사도 하 못한 채로 무상으로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역을 강제적으로 했습니다.



 이런 일을 벌인 복지원장은 수십억 원의 정부 지원금과 수용자들이 노역으로 벌어들인 수익금, 수용자들이 죽었을 때 시체로 팔아 넘기면서 막대한 부를 챙겼습니다. 근데 이 사건의 가해자인 복지원 원장은 고작 징역 2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또한, 부당수익에 관한 벌금도 이야기가 나오다가 흐지부지 없는 일이 되면서 사건은 종료됐습니다.


(MBC '히스토리 후')


 근데 이 사건은 단순히 원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지역 문제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지역 자체에서 암묵적으로 돈을 받으면서 범죄를 방관했고, 납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경찰차에 사람을 태워 복지원에 데려다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 추악한 사건을 담당하던 검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하는 도중에 윗선에서 사건을 축소하라는 외압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살아남은 피해자 중의 한 명인 한종선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기 위해 20125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책으로 이야기를 풀어쓰기도 했습니다. 한종선 씨 외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 조사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보상 및 대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전면 재검토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형제 복지원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들을 엄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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